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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FA시장도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아직 미계약자가 2명 남아있지만 현재까지 총 22명중 12명 잔류, 7명 이적, 1명 해외진출의 결과를 보이고 있습니다. 금액도 해마다 늘어 올해 국내에서만 700억대가 넘는 규모입니다. 올해도 FA시장의 대어급 인물들의 속출속에 역대 최고금액의 FA계약자도 탄생했습니다. 오히려 100억대를 넘지 않은게 이상할 정도입니다.

 

 


 

한국프로야구 FA 제도와 역사

 

한국프로야구의 FA(자유계약선수)제도는 1999년 프로야구 선수협의회의 결성과 더불어 처음 만들어졌습니다. FA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KBO에 등록되어있는 상태로 9시즌을 해야 하는데 다만 대한야구협회 대학선수로서 4년간 등록되어있던 4년제 대학 졸업자에 한해서는 8시즌을 뛰어도 자격연한을 채운것으로 인정해 줬습니다. 또한 타자는 매 시즌 페넌트레이스 경기수의 2/3 이상 출전, 투수는 규정투구 횟수의 2/3 이상을 투구하거나 1군 등록기간이 145일을 넘긴 시즌이 9년이 넘으면 FA 자격을 얻을 수 있게 됩니다.

FA 자격자는 공시후 7일동안 원소속구단과 협상하게 되고 협상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다시 7일동안 타구단과 협상을 할 수 있게 되는데 타구단과 계약에 이르게 되면 원소속구단에 보상규정에 따른 보상을 하여야 합니다.

즉, '해당 선수의 전년(前年)도 연봉의 200% 금액 + 보상 선수 1명(영입구단의 보호 선수 20인 제외)이나 '해당 선수의 전년도 연봉의 300% 금액'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 있게 됩니다.

 

 

 

한국프로야구 FA 이적 현황 (2000년대)

 

 년도

FA 

원구단

이적구단 

 계약금액

 보상

 2000

 이강철

 해태

 삼성

 3년 8억

 박충식

 2000

 김동수

 LG

 삼성

 3년 8억

 김상엽

 2001

 홍현우

 해태

 LG

 4년 22억

 최익성

 2002

 양준혁

 LG

 삼성

 4년 27억 2천

 보상금

 2002

 김민재

 롯데

 SK

 4년 10억

 보상금

 2003

 박경완

 현대

 SK

 3년 19억

 조규제

 2004

 박종호

 현대

 삼성

 4년 22억

 노병오

 2004

 조규제

 현대

 기아

 2년 4억 5천

 보상금

 2004

 진필중 

 기아 

 LG

 4년 30억

 손지환

 2004

 마해영

 삼성

 기아

 4년 28억

 신동주

 2004

 이상목

 한화

 롯데

 4년 22억

 신종길

 2004

 정수근

 두산

 롯데

 6년 40억 6천

 문동환

 2005

 심정수

 현대

 삼성

 4년 60억

 보상금

 2005

 박진만

 현대

 삼성

 4년 39억

 이정호

 2005

 김재현

 LG

 SK

 4년 20억 7천

 안재만

 2006

 김민재

 SK

 한화

 4년 14억

 정병희

 2007

 박명환

 두산

 LG

 4년 40억

 신재웅

 2009

 홍성흔

 두산

 롯데

 연봉 : 2억 7천900백

 실제 : 4년 30억

 이원석

 2009

 이진영

 SK

 LG

 연봉 : 3억 6천

 실제 : 4년 40억선

 이승호

 2009

 정성훈

 히어로즈

 LG

 연봉 : 3억 5천

 실제 : 4년 25억

 보상금

 

 

 

한국프로야구 FA 이적과 보상

 

1999년 FA제도 도입후 현재까지 51건의 FA이적이 있었는데 보상금만 선택한 경우는 16건, 보상선수를 선택한 경우는 35건입니다. 물론 신생구단의 탄생 (NC, KT)에 따라 보상선수를 내주지 않고 보상금만 선택할 수 있는 경우도 포함됩니다.

2000년대는 보상금만 선택한 경우가 5건 있었는데 그당시는 선수층이 얇아 도드라져 보이는 선수가 없는 경우였거나 재정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구단의 현실적인 선택의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러나 보상선수 대부분은 큰 역할을 해주지 못했고, 신재웅과 같은 경우는 부상으로 이적 후 한 경기도 못 던지고 방출되는 등 역할이 없었습니다. 위에도 나왔지만 20인 보호 명단+기타 보호 선수를 제외한 보상선수의 수준은 아무리 잘쳐줘도 백업내지는 중고유망주가 한계기 때문입니다. 드물게 선수층이 두텁거나 팀 로스터 관리 실수가 아닌한 보상 선수로 재미보는 건 어려웠습니다.

이원석은 보상선수로 간 직후에 능력을 만개하는 경우였는데, 현재까지 가장 보상선수로 성공한 케이스입니다. 두산 베어스의 3루수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중요한 순간(포스트시즌, 위기 상황 등)마다 결정적 한 방, 호수비를 보여주어 롯데 팬들이 '원석이를 보상으로 내준 것이 너무 아쉽다'를 외치게 한 선수가 바로 이원석이었습니다. 

문동환이나 신종길의 경우는 보상 선수로 간 구단에서 다시 트레이드 하고 나서 시일이 흐르고 나서야 기량을 보였기에, FA로서 즉전감이 나가고 받아 온 선수라는 점에서 상황이 좀 다르긴 합니다.
그렇다면 2000년대 FA 보상선수들의 면면을 짚어볼까요?

 

 


 

 

 

박충식 선수

99시즌후 해태에서 삼성으로 이적한 이강철 선수의 보상선수로 해태로 이적하게 됩니다. 당시 삼성 구단에선 '설마 부상 중인 선수를 데려가겠어?'라는 생각에 보호선수 명단에 묶지 않았는데, 그 설마가 사실이 되었습니다. 이후 선수협 파동과 열악한 해태의 재활 시스템으로 제대로 된 재활을 하지 못했음에도 중간계투로 나서서 2001년에는 3승 2패 3세이브 2홀드를, 2002년에는 5승 3패 8세이브 12홀드를 기록하는 등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나름대로 한몫을 했습니다. 그러나 부상이 재발해 2003년은 재활로 보내며 결국 시즌 종료 뒤 은퇴하였습니다.

 

 

 

 

김상엽 선수

99시즌후 LG에서 삼성으로 이적한 김동수선수의 보상선수로 LG로 이적하게 됩니다. 삼성라이온즈에서 93시즌 탈삼진왕을 할 정도로 강속구와 파워커브로 활약을 펼쳤던 선수로 90년대 초중반 삼성마운드의 전성기를 구가한 선수였습니다. 그러나 잦은 등판 및 무리한 투구로 혹사당하여 부상후 98년 이후 재활에만 전념하였습니다.

LG로 이적한 후 절치부심하여 재활을 마치고 2000년에 복귀하여 그 해 4월 9일 잠실에서 친정 팀인 삼성을 상대로 선발 등판했으나, 3이닝 4실점으로 조기 강판당하고 패전 투수가 되었습니다. 이후 한화전에 등판한 것을 마지막으로 그 해 6월에 팔꿈치 수술을 받게 됩니다. 2001년에는 또 다시 어깨 부상이 찾아오면서 결국 마운드로 돌아오지 못한 채 LG에서 6.2이닝/2패만 기록한 후 그 해 9월에 현역에서 은퇴하였습니다. 통산 승수는 78승.

 

 

 

 

 

최익성 선수

00시즌후 해태에서 LG로 이적한 홍현우 선수의 보상선수로 해태로 이적하게 됩니다.

최익성 선수의 이적사는 화려합니다.

삼성 라이온즈(1994~1998), 한화 이글스(1999), LG 트윈스 (2000), KIA 타이거즈(2001~2002), 현대 유니콘스(2002~2003), 삼성 라이온즈(2004), SK 와이번스(2005).

연습벌레로 불릴만큼 열심히 하는 선수였지만 부상과 여러가지 일들로 인해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지는 못한 선수로 평가됩니다.

 

 

 

 

조규제 선수

02시즌후 현대에서 SK로 이적한 박경완 선수의 보상선수로 현대로 이적하게 됩니다.

조규제 선수도 팀 이동이 많은 선수중에 한명이었습니다.

쌍방울 레이더스 (1991~1998), 현대 유니콘스 (1998~2000), SK 와이번스 (2000~2002), 현대 유니콘스 (2003), KIA 타이거즈 (2004~2005).

신인왕 출신으로 쌍방울의 주축 불펜진으로 활약하다 1998년 현금 10억+박정현+가내영과 맞바뀌어 현대로 이적했고, 2000년 신생팀 SK의 전력 평준화를 위해 우승팀에서 선수 2명을 현금트레이드로 영입이 가능하다는 지원책 덕분에 조웅천과 같이 현금 15억원에 SK에 현금 트레이드되었습니다. 이후 2004년엔 오히려 FA를 행사하여 기아타이거즈로 이적하게 되는데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고 2005시즌후 방출당해 은퇴하게 됩니다.

 

 

 

 

 

노병오 선수

03시즌후 현대에서 삼성으로 이적한 박종호 선수의 보상선수로 현대로 이적하게 됩니다. 2002년 유망주로 삼성에 입단하여 괜찮은 활약을 보여줬지만 2003시즌전 부상으로 많은 등판을 하지 못했습니다. 부상의 여파 때문인지 현대 이적 이후에도 제 몫을 못하면서 성장이 정체되어 서서히 잊혀지고 말았습니다. 2007년 1승 1패 방어율 8.44를 기록한 것이 노병오의 마지막 1군이었습니다.
2007 시즌 종료 후 경찰야구단에 입대해 2008년에는 38경기에 등판해 5승 8패 4세이브 2홀드 7.31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고, 2009년에는 25경기에 등판해 9승 5패 세이브 5.34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습니다.
제대 후 합류한 넥센히어로즈에서 1군에 오르지 못해 결국 2011 시즌 종료와 함께 은퇴를 선언하게 되었습니다.

 

 

 

 

손지환 선수

03시즌후 기아에서 LG로 이적한 진필중 선수의 보상선수로 기아로 이적하게 됩니다.

이적 후 이현곤 선수의 공백을 메움과 동시에 2004, 2005년 2년 연속 두 자릿수 홈런을 치며 어째 FA로 간 진필중보다 더 쏠쏠하게 활약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2007년 6월 12일 삼성 라이온즈와 경기에서 무보살 삼중살을 펼치는 메이저리그식 장면을 연출해 보이기까지 했는데 그 때문인지 2008년 삼성에 영입되기에 이릅니다. 그러나 삼성에서 주로 백업멤버로 뛰었고 결국 2008시즌 종료 뒤 삼성에서 방출, SK 와이번스로 이적하게 됩니다.

그러나 SK에서마저도 09시즌 이후 방출되게 됩니다. 경쟁자가 많은 SK내야에 살아남을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 뒤 일본 독립리그에서 뛰다가, 주전 3루수인 송광민이 시즌 중 군입대라는 초유의 해프닝으로 이탈하여 3루수가 필요해진 한화 이글스가 신고선수로 영입했습니다.
2010년 7월 27일 오선진의 부상으로 1군에 콜업되어, 몇 경기 안되지만 제법 괜찮은 타격을 선보였지만8월 28일 두산전 임태훈의 공에 번트를 대려다 오른손 엄지골절상으로 6주간 출전 불가, 시즌 아웃됐습니다. 그리고 시즌 종료후 젊은 선수들을 키운다는 명분으로 또다시 방출되기에 이릅니다. 참 우여곡절이 많은 선수였습니다.

 

 

 

 

 

신동주 선수

03시즌후 삼성에서 기아로 이적한 마해영선수의 보상선수로 삼성으로 이적하게 됩니다.

재미있게도 신동주선수는 2001년 이후 삼성과 기아를 거의 2년단위로 왔다갔다 하게 되는데요. 그야말로 핑퐁선수였습니다. 트레이드-보상선수-트레이드.

초창기 시절 삼성에서 호타준족의 면모를 과시하며 쏠쏠한 활약을 펼쳤지만 2000년 이후 어정쩡한 팀내 위치상 경상도와 전라도를 가로지르는 선수가 되었습니다.

2004년 이후 뚜렷한 활약을 펼치지 못하며 2006년 웨이버 공시되어 은퇴하게 됩니다.

 

 

 

 

 

신종길 선수

03시즌후 한화에서 롯데로 이적한 이상목 선수의 보상선수로 한화로 이적하게 됩니다.

2004년 시즌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한 것으로 유명해졌는데 그 이후 1군 기록이 없고 공익근무를 하게 됩니다. 2008시즌이 끝난후 기아 강동우와 트레이드되어 고향팀에 복귀하게 되지만 2012시즌까지는 2군을 오가며 어중간한 모습이었습니다. 2013시즌 1군 기회를 다시 잡게 되며 좋은 활약을 펼치는 중입니다. 현재까지 기아타이거즈의 주전급 외야수로 자주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문동환 선수

03시즌후 두산에서 롯데로 이적한 정수근 선수의 보상선수로 두산으로 이적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루만에 다시 한화의 채상병과 트레이드 되어 한화유니폼을 입게 되는 아이러니한 일의 주인공이 됩니다.

문동환은 대학졸업후 입단한 아마구단 현대피닉스 시절부터 에이스급 활약을 보여줬고 롯데로 이적한 후 90년대 후반 뛰어난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그러나 2000년 이후 부상으로 3년동안 고작 11승에 그치게 됩니다. 2004년 절치부심한 후 2005~2006년 한화이글스의 든든한 선발의 모습을 다시 보여줬으나 또다시 혹사 논란에 휩싸이며 2007시즌 이후 부상을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2009년 웨이버공시되고 말았습니다.

 

 

 

 

이정호 선수

04시즌후 현대에서 삼성으로 이적한 박진만 선수의 보상선수로 현대로 이적하게 됩니다.

역대급 고교유망주 투수로 삼성에 입단한 이정호 선수는 기대감을 한몸에 받았으나 빠른 구속의 부담감속에 결국 부상을 입어 2001년부터 2004년까지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합니다.

이후 현대와 히어로즈 팀에서도 부상여파를 극복하지 못하며 위상을 완전히 구겼는데 돌발로 2010년 11월 급작스레 해외진출을 선언하기에 이릅니다. 당연히 자존심을 지키려는 마지막 발언인 것으로 짐작이 되었는데 아무런 소득을 얻어내지 못하며 선수생활을 마감하게 됩니다. 작년 먹튀논란 인터뷰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안재만 선수

04시즌후 LG에서 SK로 이적한 김재현 선수의 보상선수로 LG로 이적하게 됩니다.

1997년 LG에 먼저 입단하였지만 2001년 취약한 마운드 보강과 백업포수의 필요성에 의해 SK의 유현승, 장재중과 트레이드되어 SK유니폼을 입게 됩니다. 2001시즌 주전 3루수, 2002시즌 부상으로 활약 미비, 2003~2004시즌 백업 요원으로 활약하게 됩니다.

LG이적후에도 시즌초반 좋은 활약을 펼치다가 페이스가 떨어지며 저조한 성적으로 마무리 하는 년도가 많아지며 결국 2007시즌후 방출되어집니다.

이후 기아에 다시 입단했지만 별다른 활약없이 2008년 6월 웨이버 공시 후 은퇴하게 됩니다.

 

 

 

 

정병희 선수

05시즌후 SK에서 한화로 이적한 김민재 선수의 보상선수로 SK로 이적하게 됩니다.

2001년 휘문고등학교 시절 주축투수로 활약하며 우규민 선수와 함께 팀의 황금사자기 우승에 기여합니다. 그에따라 2002년 한화이글스의 2차 2순위로 프로에 입문하게 됩니다만 이후 별다른 활약없이 SK시절까지 거치다 2010년 제대후 SK에서 마저도 방출되게 됩니다.

 

 

 

신재웅 선수

06시즌후 두산에서 LG로 이적한 박명환 선수의 보상선수로 두산으로 이적하게 됩니다.

안타깝게도 두산 이적후 부상으로 방출되게 됩니다. 공익 복무후 좌완투수가 필요했던 LG에 11시즌 다시 복귀하게 되는데요. 처음 선발로 고려되어졌으나 불펜으로 낙점된 후 2014시즌까지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고 투수조련의 대가였던 레오 마조니의 극찬을 받았던 선수였습니다.

2015시즌 예년의 구속을 회복하지 못하다가 시즌 도중 3:3트레이드를 통해 SK로 유니폼을 갈아입게 됩니다.

발동이 늦게 걸리는 편으로 알려져 있는데 SK에서 시즌 후반 좋은 활약을 펼치며 좌완불펜의 한축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원석 선수

08시즌후 두산에서 롯데로 이적한 홍성흔 선수의 보상선수로 두산으로 이적하게 됩니다.

이적후 12시즌까지 내야유틸리티 플레이어로 쏠쏠한 선수였고 가끔 장타를 선보이며 점점 주전급 선수로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13시즌 3루에 부상공백이 생기자 주전을 꿰차며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기에 이릅니다.

이원석 선수는 잠실에서도 홈런을 자주 보여줬는데요. 결정적일 때 한방이 팬들의 뇌리에 많이 각인되어져 있는 선수입니다.

14시즌후 상무에 입단하였습니다.

2000년데 FA보상선수로 가장 성공한 케이스라 평가되어집니다.

 

 

 

이승호 선수

08시즌후 SK에서 LG로 이적한 이진영 선수의 보상선수로 SK로 이적하게 됩니다.

LG에서 불펜과 선발을 오가며 나름 괜찮은 활약을 펼치다 결국 부상으로 전력외로 빠지게 됩니다.

SK 이적후 선발로 투입되려 했지만 부상으로 무산되고 2010~2011시즌 불펜에서 쏠쏠한 활약을 펼치며 2010년에는 SK 한국시리즈 우승에도 기여하게 되고 2011년 FA로 SK에 잔류하게 됩니다.

2012년 이후 여기저기 부상이 발견되며 결국 마운드에 다시 오르지 못하게 되며 결국 2014년 7월 웨이버 공시되기에 이릅니다.

 

 

 

2010년대 FA이적에 따른 보상선수는 다음편에 소개하겠습니다.

 

 

 

한국프로야구 FA 규모에 가려진 보상선수들의 명암 2011~2016년 (2)

 

 

 

 

(상기 이미지의 저작권은 해당사에 있으며, 포스팅 내용의 이해를 돕기 위한 인용의 용도로만 사용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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